[영화] 스파이 브릿지 (2015)


이 영화는 스티븐 스필버그가 감독하고 톰 행크스가 주연으로 출연한 것으로, 2015년 11월에 한국에서 개봉했을 때 누적 관객 수가 26만 명에 불과했는데, 내게는 그만큼 수작이라는 느낌이 든다.

1957년, 미국과 소련의 냉전은 극에 달해, 양국은 서로 가진 핵무기를 두려워하는 시절이었다. 이 때, 미국에서 활동하던 소련 소속 스파이인 루돌프 아벨 대령이 체포되어 CIA에게 변호를 맡기는 일이 벌어졌다. 이 변호를 맡은 변호사는 보험 전문가인 제임스 도노반이었다. 미국과 소련은 서로를 극도로 증오했기 때문에, 적국에게 핵무기 기술을 전달하려 한 스파이를 변호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제임스 도노반은 “변론의 기회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져야 한다”는 신념으로 변호를 시작했다.

제임스 도노반은 아벨 대령의 변호를 진행하면서 적국의 스파이임에도 불구하고, 아벨 대령이 굳건하게 지키는 신념에 호감을 갖게 되고, 그에 대한 존경으로 최선을 다해 변호를 하게 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도노반은 미국인들의 반감과 적대감을 받게 되고, 가족들이 살고 있는 집에는 돌을 던지는 등 테러가 일어나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도노반은 변호사로서의 신념을 지켜내기 위해 힘썼다. 결국 아벨 대령은 사형 판결을 받게 되지만, 도노반은 이 일로부터 더욱 강한 신념과 믿음을 얻게 되었다.

이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면, 나는 이 변호사의 행동이 굉장히 과한 것 같다고 생각할 것이다. 가족들이 위협당하고 손가락질을 받는 등의 상황에서도 이렇게 적극적으로 변호하는 것은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기본적인 인권을 보호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지만, 이 정도까지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변호사는 스파이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 또한 인간으로서 대접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도노반의 신념이었다. 또한, 미래에 미국 군인이 적국에서 포로가 되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기 때문에 이를 고려해서도 사형을 선고받게 둘 수는 없다는 것이 도노반의 생각이었다.

미국 전투기 조종사인 게리 파워스가 소련에 의해 납치되는 사건이 일어나게 된다. 그는 전투기에서 소련의 군사시설을 촬영 중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소련에서 발사한 미사일로 인해 전투기가 격추되어 체포되었다. 미국과 소련은 아벨 대령과 파워스를 서로 맞교환하기로 협상했고, 이 일을 수행할 대표 관료 대신 도노반 변호사에게 임무를 맡겼다. 도노반은 의뢰를 받고 이 일에 나서기로 결정했고, 포로 교환 협상을 위해 동독으로 출발하게 된다.

동독에서 파워스와의 포로 맞교환 협상 중, 도노반은 또 다른 민간인 대학생 포로인 ‘프레드릭 프라이어’에 대해 알게 된다. 프라이어는 예일대학교 경제학 박사과정 학생으로, 동유럽의 계획경제에 대한 연구를 위해 동독 베를린에서 유학 중이었다. 그러나 탈출을 시도하다가 동독인 애인과 아버지인 교수와 함께 베를린 장벽에 막혀 동독에 갇히게 되었다. 도노반은 협상 과정에서 이 사실을 알게 되고, 프라이어도 함께 교환해야 한다고 결심한다.

이 임무에서 CIA 담당자는 대학생인 프레드릭 프라이어에게 흥미를 느끼지 않는다. 그저 파워스와 아벨의 교환만 성사시키면 된다고 생각하여, 프라이어에 대한 도노반의 집착을 괴롭히게 된다. 소련과 동독의 담당자들도 2:1 맞교환은 옳지 않다고 도노반을 반대하지만, 도노반은 이것이 아니면 안된다는 생각에 배수진을 치고 베팅하게 되며, 결국 이들은 이 조건을 수락하게 된다. 마지막에는 포로교환을 무사히 마치고 영화는 끝나게 된다. 이 영화는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관련 인물들에 대한 궁금증이 생겨 검색을 해보게 되었다.

제임스 도노반은 1916년부터 1970년까지 살았으며, 피그만 침략 당시 협상 단에서 활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1961년 미국인 구출 작전을 수행하기 위해 피델 카스트로와 협상을 했으며, 이를 통해 1,100명 이상의 생존자와 8,500명의 정치범들의 생명을 구했다. 이와 관련한 내용이 영화에서도 마지막에 자막으로 나온다. 제임스 도노반이 대법원에서 했던 발언은 실제로 그가 한 발언과 동일한 내용으로 알려져 있다.

영화에서는 아벨과 프라이어가 붙잡힌 후, 바로 포로교환 협상이 이루어졌다는 내용으로 연출되었지만, 실제로는 아벨은 5년간 복역하고, 파워스도 2년간 복역한 후에 교환되었다고 한다. 이를 고려하면, 아마도 파워스와의 교환이 처음부터 염두에 두고 변호를 한 것이 아닐까 추측된다. 프라이어는 예일대 학생으로, 풀려난 이후 경제학자가 되어 명예교수까지 역임하며 오래 살았다. 이 영화가 그에게는 특별한 의미를 가진 영화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2019년, 그는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Leave a Comment